희망편지 모음4
"공부를 하다보니 인간관계에 소홀해지고
함께 있어도 소외감을 느끼고
외골수가 된 것 같다" 는
질문자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안 만난다고
인간관계가 나빠지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고 해서
인간관계가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자주 만나고 안 만나는 데서
오는 문제가 아닙니다.
소통을 하려면 내가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소통의 핵심은 들어 주는 것,
남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저런 생각으로 말하는구나
저런 마음이구나..’
함께 있어도 자기 속에 빠져있고
상대를 헤아리지 않으면
외로운 것입니다.
내 존재를 제대로 알면
칭찬에 우쭐댈 일도 없고
비난에 신경 쓸 일도 없습니다.
칭찬이나 비난이
상대의 감정표현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
내가 그 말에 구애받지 않게 됩니다.
같은 꽃을 보고서도
어떤 사람은 예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말없이 피어있는 꽃을 보고서도
서로 다른 표현을 하는데
각자 자기 생각과 감정으로 하는 말에
내가 흔들릴 이유가 없지요.
어떤 칭찬이나 비난에도
걸림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사세요
외로움은 내 옆에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마음의 문을 닫으면 외로워지는 거예요.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과
서로 몸을 부대끼는 환경에서도
어쩔 수 없이 외롭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깊은 산속에 혼자 살아도 외롭지가 않습니다.
풀벌레도 친구가 되고,
새도 친구가 되고,
밤하늘의 별도 친구가 됩니다.
외롭다는 것은 지금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대낮에도 어둡다고 고함치는 사람과 같아요.
그걸 알아차려서 스스로 외로움에서 벗어나 버리면,
외로움 때문에 사람을 찾지는 않게 됩니다.
엄마가 심리가 불안한 상태에서
아기를 키우기 때문에 갈수록 정신질환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애 낳은 엄마는 무조건 3년 휴가를 주거나
재택근무를 시켜주거나 애 업고 나와서 일 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의 정신 문제가 해결됩니다.
아기는 전적으로 엄마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엄마 마음이 안정되도록
남편은 아내한테, 시어머니는 며느리한테
무조건 잘해줘야 됩니다.
비싼 분유 먹이고 학원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기 엄마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
아이를 진짜 잘 키우는 방법입니다.
꽃을 보고 좋아하면,
꽃이 기분이 좋습니까?
내가 기분이 좋습니까?
내가 기분이 좋습니다.
상대를 좋아하면 내가 좋습니다.
행복도 내가 만들고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써
원림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보왕삼매론-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그 마음에
기꺼이 응해 주기는 어렵죠.
그래서 갈등이 생겨나고
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상대가 내 뜻대로 해주지 않으면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강제하고
그러면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반면 상대가 내 뜻대로 잘 따라주면
나도 모르게 교만한 마음이 생겨
어디에서나 사람을 부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
뜻을 맞추어 나가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뜻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은
교만을 없애는 최고의 수행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 오늘도 살아있구나' 하고 살아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두 다리가 있어 걸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두 손이 있어서 뭔가 만질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이처럼 자신의 일상 속에
주어진 조건들에 대해서 만족한다면
인생은 행복해집니다.
부모님이 계시는 것에 만족하면
바로 그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고,
두 눈이 있어서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에 만족하면
두 눈이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처럼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곧 행복입니다.
운전하다 다른 차가 끼어들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게 돼죠.
그럴 때 대부분 ‘다른 차 때문에
화가 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에서도
화가 안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슷한 예로,
어떤 사람은 달을 보고 슬퍼하고
어떤 사람은 달을 보고 기뻐합니다.
이것은 달이 슬픔과 기쁨을 준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에서
슬픔과 기쁨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를 보면
화는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일어난 것입니다.
내 속에 화가 나는 요인,
화가 쉽게 올라오는 성질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화가 올라올 때는
‘화를 내야 돼’, ‘안 내야 돼’
판단하지 말고
‘아, 화가 올라오는 구나’ 하면서
마음을 살펴보세요.
그러면 조금씩 고쳐집니다.
남녀 관계가 문제가 생기는 원인은
'내가 널 좋아하니까, 너도 좋아해라'
혹은
'나는 세번 좋아했는데 너는 왜 한번만 좋아하는 거야?'
이렇게 자꾸 장사를 하니까 복잡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랑이든 결혼이든 남녀의 감정 사이에서 장사하지 마세요.
사업적인 계산을 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이 좀 편하게 만나고
마음을 열고 살면
어떤 사람과 만나도 평생 해로하며 살 수 있어요.
그렇게 하면 저절로 행복해집니다.
미국에서 사는 한 여성분이
한국의 부모님이 걱정되어
어디서 살아야 할 지
고민이라고 합니다.
이런 고민이 생기는 이유는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스무살이 되기 전 사람들은
부모님의 보호를 받고
그 때는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성장한 후에
자신의 삶을 결정지을 선택들을
부모님에게 넘긴다는 것은
아직 정신적으로 독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디서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주체가 돼야 하는 문제이고 ,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것 또한
자신입니다.
부모님을 이유로 삼는 것이
혹여 결정을 내린 후
후회할 만한 상황이 생기면
부모님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려는 것은 아닐까요?
인생은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지는 것입니다.
사춘기는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움을 얻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입니다
성적이 떨어졌거나
실수를 하는 것에 대해
부모가 지나치게 고민하고
문제를 삼는 것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시기의 방황은
어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하는 성장통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교정할 수 있도록
차분히 지켜봐 주세요.
부모가 대범해야
교육이 제대로 되고
아이도 의젓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구슬치기를 잘해서
친구들 구슬을 많이 땄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구슬을 보물처럼 움켜쥐고 놓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구슬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요.
이렇게 한때는 전부였던 것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어떤 구슬을 움켜쥐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부모의 책임은
아이를 스무 살까지
키우는 것입니다.
세 살까지는
사랑으로 보살펴주고
어린 시절에는
화목한 가정의 모범이 되고
사춘기에는 간섭보다는
가만히 지켜봐주십시오.
그리고 20살이 넘어 성인이 되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도 간섭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관계를 자르라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인간으로서, 성인으로서
대우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판단과 결정도
너의 결정을 믿고 지지하겠다는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결혼이나
부모와 같은 삶을 살도록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조언을 할 수는 있지만
선택은 스스로 해야 합니다.
본인이 살아 본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간섭이나 지원이 길어지면
그만큼 나의 짐은 무거워지고
자녀는 불행해진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나이 먹는 것을 서운해하지 마세요.
봄꽃이 예쁘지만 며칠 못 가서 떨어집니다.
떨어진 꽃을 주워가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가을에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은
떨어져도 예쁩니다.
주워서 책갈피에 꽂아두죠.
나이 먹는 것은 단풍과 같고
젊음은 꽃과 같아요.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예쁩니다.
나이 드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젊었을 때보다
더 좋은 것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홀가분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앞만 보고 달리느라 보지 못했던
자연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고
자식 키우느라 못했던 일들을
욕심내지 않고 해볼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옛날 것도 알고
요즘 것도 알아서 앞날을
예측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예전처럼', '젊었을 때와 같이'를
고집하지 않고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나이 들어서도 좋은 것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두고 이럴까 저럴까
오랫동안 망설인다면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도 괜찮습니다.
밤잠을 안 자고 고민해도
쉽게 결론이 안 난다는 것은
그렇게 오래 고민할 가치가 없다는 거예요.
어느 쪽으로 결정해도
이익과 손실이 비슷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오랫동안 고민한다고
좋은 결론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결정한다고
나쁜 결론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계속 망설이는 것은
손해는 보지 않고 이익만 얻으려는
욕심 때문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해도
이익과 손실이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택에 따른 손실까지 책임지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고
그렇다고 일어나지 않는 것이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는 것보다
어떤 일이 생긴 상황 속에서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어쩔 수가 없이 일어난 일에
끌려 다니며 괴로워하고 미워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써버린다면
자신의 행복과 삶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주어진 조건이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는 행복할 수가 있다.
행복할 수 있는 많은 조건들이 있다
어떤 상황에든 그 길을 가겠다는
삶의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열린 가능성을 포기하고
괴로움 속으로 빠져드는 것도
행복과 자유를 찾아 나아가는 것도
모두 본인의 선택입니다.
내가 행복해지느냐 아니냐는
바로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결혼할 때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복하려고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죠.
왜 이런 갈등이 생길까요?
내 마음에 상대한테 '덕'을 보려는
심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서 돈 있는 남자를 구하고,
외로워서 위로해 줄 사람을 구하고,
이렇게 상대한테 기대려는 마음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상대도 나한테
같은 마음을 가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 기대가 무너지듯이
상대의 기대도 무너집니다.
그러니 덕 보려는 마음이 아니라
베풀어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하면
누구하고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보왕삼매론"에서는
아래의 열가지 바라는 마음을
버리는 수행에 대해 말합니다.
몸에 병이 없기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수행하는데 마(魔) 없기를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공덕을 베풀 때 과보를
분에 넘치는 이익을
억울함을 당할 때 밝히기를
바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막히는 데서 도리어 통하고
통함을 구하는 것이
오히려 막히는 것이니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장애 가운데에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그와 같이 배우려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면
장애가 왔을 때 이겨내지 못해서
부처님의 소중한 가르침을
잃어버릴 수 있으므로
역경을 통하여 깨달음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은
바라는 마음에서 생겨납니다.
바라는 마음을 버리면
세상살이에 겁날 게 없으며
어느새 자유로운 사람이 된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내 기준을 고집하고
내가 원하는 모습을 강요하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가족과 갈등을 빚습니다.
있는 그대로 가족의 모습을 인정하세요.
오늘, 당신의 가족에게 이렇게 말해보세요.
“참 고마운 사람, 참 훌륭한 사람”
가족 안에서 행복해야 삶이 아름다워집니다.
예수님은 어떤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셨나요?
부처님은 이 세상에
어떤 이유로 오셨나요?
우리가 그분들을 따른다는 것은
그 분들의 삶을 본받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종교인들은
그분들의 희생을 내세워
보상만 바라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그분들의 삶을 칭송하기만 하고
그냥 덕만 보는 데에
급급한 것 아닌가 돌아봐 집니다.
우리가 그분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닮아가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 보다는 조금
낫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부활의 새로운 희망이 생겼듯이
이런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다시 부활의 희망과 힘을
가져야 될 것 같습니다.
좀 더 마음을 모으고
사회를 좀 더 화합시키고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길을 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오늘 어떻게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성탄절을 맞아
어려운 시기에 부활의 희망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부부관계가 원만하려면
두 가지를 유념해야 합니다.
부부사이에는 서로 사랑해서
만나기도 했지만 덕 보려고
하는 마음이 좀 깔려 있습니다.
그렇게 덕 보려는 마음이 있으니
살아보니 오히려 손해다
그러면 헤어지는 게 낫지 않나
이렇게 마음이 가게 돼죠.
그래서 첫째로 덕 보려는
마음을 놓아야 합니다.
또 부부라고 해도
여러 가지가 서로 다르죠.
그런데 서로 내 식대로 하려하면
자꾸 갈등이 생기고 화가 납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당신이 좋다’는 마음보다
오히려 이 두 가지 마음이
원만한 부부관계의 기초가 됩니다.
입시 공부할 때는
합격만 하면 행복할 것 같고
대학생 때는
취직만 하면 소원이 없을 것 같지만
취직했더니 또 괴롭습니다.
결혼하면 행복할까 했더니
결혼이 원수가 됩니다.
힘들게 아이들 키워서 결혼시키면
끝인줄 알았는데
손자손녀까지 돌봐야 돼요.
우리는 언젠가 행복해질 거라고
기대하지만 갈수록 태산이죠.
그러니까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오늘 행복하면
내일도 행복하고
매일 매일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모라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간섭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기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그 때는 내 가족이 아니라도
도움을 주는 것이
사람의 도리입니다.
하지만 도움이라는 명목 하에
지나친 간섭으로
일을 더 크게 만들거나
서로에게 큰 괴로움을
주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스스로 살아갈 권리와
책임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어 보이더라도 가능하면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모두 살아가는 것이 어렵지만
주위를 보면 나보다 더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아픔을 알고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을 내면
그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좋습니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다보면
'그래도 내 처지는
저 분들보다는 낫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내 괴로움에만 빠져 있던
상황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남을 도우면 꼭 나중에
무언가 돌아오는 보답이
있어서가 아니라
남을 돕는 그 자체가
내게 기쁨이 됩니다.
자녀 교육이 문제가 많은 것은
부모가 사람답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갈등하면서 살기 때문에
그 미움, 괴로움, 불안이
고스란히 아이들 마음에 자리잡습니다.
훌륭한 교육은
물질적인 뒷바라지도
값비싼 사교육도
해외유학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인생은 수를 놓는 것과 같습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겪는 것이
그대로 인생입니다.
꽃을 놓든 잎을 놓든 배경을 만들든
수를 놓는 사람에게는
다만 한 땀 한 땀일 뿐인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겪든
순간순간이 다 소중한 나의 인생입니다.
어느 순간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인생에 반복은 없습니다.
꽃을 여러 개 수놓는다고
반복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오늘만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나날이 시시때때로 새롭게 출발합니다.
올 한 해 제일 잘한 게 뭘까요?
첫째, 안 죽고
살아남은 것입니다.
올해 죽은 사람이
수십만 명 되겠죠?
거기에 안 낀 것만 해도
굉장한 일을 하신 겁니다.
둘째, 크게 다쳐서 병원 신세
안 진 것만 해도 큰 일 하셨어요.
만약 병원 신세를 진 분이 계시면
‘그 와중에 안 죽고 살았다’고
감사하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는 교통사고 안 나고
올 한 해를 보내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셋째,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괴로움을 겪지 않았다면
다들 잘 사신 것입니다.
혹시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별 것 아니다 하고 이겨냈다면
그것도 대성공입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것보다
더한 복은 없습니다.
올해는 아주
축복받은 해였습니다.
매일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나날이 새날이고
나날이 새해입니다.
그렇다면 특정한 날을 정해
끝을 맺는 것에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날을 정해 끝을 맺는 것은
지난 것은 다 털어버리고
새로 시작해보자는 뜻입니다.
아무 연습을 안 하면
진짜 털어야 될 때 못 털게 됩니다.
매년 이렇게 털어버리는 연습을 해야
죽을 때 잘 털고 갈 수 있어요.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다 놓아버리세요.
그렇게해서 새해에는
365일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새해 인사로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죠.
하지만 복은 받을만한
행동을 했을 때 받는 것이지
가만히 앉아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새해에는 아래
10가지 덕목을 실천하면서
복 많이 지으시기 바랍니다.
1. 무엇이든 방긋 웃으며
‘예’하는 사람이 된다.
2. 사랑받기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3. 이해받기 보다
이해하는 사람이 된다
4. 도움받기 보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된다
5. 의지하기보다
의지되는 사람이 된다
6. 화내지 않는 사람이 된다
7.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8. 좋은 일은 손해를 보더라도
기꺼이 하는 사람이된다
9. 실패를 곧 성공의 길로
삼는 사람이 된다.
10. 모르면 묻고, 틀리면 고치고
잘못하면 뉘우치는 사람이 된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시험을 보거나,
사업을 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학생이 시험을 잘 보려면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할까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까요?
학생에게는
‘시험에 합격하게 해 주세요’하고
절하는 게 기도가 아니고,
열심히 공부하는 게 기도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업이 잘되게 하려면
사업에 관계되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기도했다는 핑계로 준비도 없이
사업을 시작해서 망해놓고
기도했는데 영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책임을 전가시키는 일입니다.
세상에 요행수나 바라고
도박하는 사람들에게
성공이 올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미 일어난 일은 감사히 받아들이고,
복을 받으려면
복을 받을만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내일도 모르는 삶 속에서
죽은 후의 삶을
고민하지 마십시오.
지금 내가 행복하면
내세의 삶도
행복할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구원의 길이 있는 것이지
가고 싶다고 애걸한다고
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보고
스스로 행복하게 살아가다 보면
천국이 있다면
가게 될 것입니다.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입니다.
이해가 없으면 내 입장에서는 사랑이어도
상대방에게는 억압이 됩니다.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너도 나를 좋아해라.'
이렇게 내 감정에 눈이 어두워서
상대를 속박하는 것이죠.
사랑의 핵심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거예요.
상대는 나와 다릅니다.
사춘기는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움을 얻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입니다
성적이 떨어졌거나
실수를 하는 것에 대해
부모가 지나치게 고민하고
문제를 삼는 것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시기의 방황은
어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하는 성장통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교정할 수 있도록
차분히 지켜봐 주세요.
부모가 대범해야
교육이 제대로 되고
아이도 의젓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모르면 물어서 알면 되고,
틀리면 고치면 되고,
잘못했으면 뉘우치면 됩니다.
그러면 인생을 살 때 겁날 것이 없어요.
이것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방법입니다.
말기 암에 걸린 친구의 병문안을
다녀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신 분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하루밖에 못 사는데
1년이나 살 사람을 위문한 셈입니다
죽음의 순간은 언제 올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냅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면
내일 죽어도 후회가 없습니다.
말기 암에 걸린 친구의 병문안을
다녀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신 분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하루밖에 못 사는데
1년이나 살 사람을 위문한 셈입니다
죽음의 순간은 언제 올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냅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면
내일 죽어도 후회가 없습니다.
설악산을 좋아할 때는 실망이 없습니다.
동해 바다를 좋아할 때도 실망이 없습니다.
산이나 바다에
바라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가없는 사랑을
부모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조차도 자식이 뜻대로 안 되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할 때
꼭 대가를 바랍니다.
이것이 미움과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내가 괴롭지 않으려면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하면 됩니다.
다만 내가 좋아서 할 뿐입니다.
많은 부모가 자식을 남 보기에
좋은 모습으로만 키우려 합니다.
얼굴 예쁘고 공부 잘하는 아이를
만들려고 하죠.
그래서 좋은 옷을 입히고 유학을 보내면서
부모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아이들은 그런 조건이 없어도
부모의 사랑이 있다면 잘 살 수 있습니다.
물질적인 조건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부모의 따뜻한 품이 있다면
아이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감정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납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라고
깨닫기 전에 일어나 버립니다.
그러니 감정이 일어난 후에
‘안 그랬어야 되는데...’ 라고
후회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자꾸 스스로를
비난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냥 ‘내 감정에 사로잡혔구나.’
이렇게 알아차려 보세요.
마음도 편하고 좋아질 가능성도
훨씬 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식을 낳고서도 혼자 몸일 때와 같은
연약한 여자의 심성으로 살면
자식을 잘 키울 수 없습니다.
이런 저런 자극에 흔들리며 불안해하고,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고 성질내던
내 습관대로 아이를 키우면,
아이도 엄마처럼 불안정하고
분노가 많은 사람이 됩니다.
아이가 건강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행복하려면
먼저 엄마부터
마음의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불안한 여인의 마음이 아니라,
‘내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킨다’는
굳건한 엄마의 마음을 가져야 해요.
그래야 아이가 그런 엄마의 마음을
지지대 삼아서 잘 자랍니다.
자식에게 엄마는
세상이고 우주이며 신입니다.
아이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해주어도
부모가 화목한 것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부모가 사이가 좋으면
아이는 마음이 편안해져서,
세상에 나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아이는 부모를 따라 배우는 존재이기 때문에
먼저 부모가 모범을 보이는 게 가장 좋아요.
아이와 함께 방청소도 하고
옷도 같이 개는 거예요.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따라 배우게 하는 겁니다.
특히 엄마는 아이를 신경질적으로 대하거나
화를 내서는 안 되고, 모범을 보이면서
진득하게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가 화목해서
아이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부모가 모범을 보여서
아이가 자연스럽게 배우게 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교육입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아이가 어릴 때는
정성을 들여서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는 게 사랑이에요.
둘째, 사춘기의 아이들은
간섭하고 싶은 마음,
즉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면서
지켜봐주는 게 사랑입니다.
셋째, 성년이 되면
부모가 자기 마음을 억제해서
자식이 제 갈 길을 가도록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삼는
냉정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헌신적은 사랑은 있는데
지켜봐 주는 사랑과 냉정한 사랑이 없어요.
이런 까닭에 대부분 자녀 교육에 실패합니다.
자생력을 키워 주는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사춘기 아이들은 특징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자기가 직접 해보려고 합니다.
부모가 볼 때는 아이가 갑자기 말 안 듣고
반항하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지켜봐 주는 겁니다.
넘어지고 자빠질 때마다
일으켜 세워 주는 게 아니라
옆에서 지켜봐 주는 거예요.
이 시기는 시행착오를 거듭해서
실패의 경험을 통해
자아가 성숙해지는 때이니까
안타까워도 기다려 줘야 합니다.
자식이 자립해야 할 시기에 내버려두지 않고,
연애할 때 연애 못하게 하고,
방황해야 할 시기에 방황을 못하게 하면,
그 과보로 자식은 나약해지고,
부모는 늙어서까지
자식의 짐을 지고 가야 합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가능하면 자녀가 스스로 경험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게
진정한 부모의 역할입니다.
흔히 부모들이 자식의 부족한 점을 보면서
‘우리 아이 잘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아이가 지금
잘못되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안 될 것 같으니까 잘 되게 해달라는 것이지요.
엄마가 자식을 못 믿는데
이 세상 어느 누가 그 아이를 믿어 주겠어요.
이 기도는 화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 잘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다 보면
부모가 자식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부모가 믿어주면 자식도 용기가 생겨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만약 자식이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그것도 잘되고 있는 겁니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엄마가 믿어주고
“괜찮아, 너는 잘하고 있어. 엄마는 믿어.”
이렇게 말해 줘야 합니다.
그러면 자식이 잘못될 일이 없습니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자식에게만 정성을 쏟으면
반드시 자식이 어긋나고 불효합니다.
내가 부모를 먼저 생각하면
매를 들고 자식을 가르칠 필요 없이
자식이 저절로 따라 배워요.
우리 아이가 공손하기를 원하면
아내가 남편한테 공손하면 됩니다.
이것은 남녀문제가 아니에요.
남녀로서는 부부지간에 평등하지만
자녀를 키우는 엄마로서는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엄마는 자녀의 모델이기 때문이에요.
엄마가 성질 내면 따라 성질 내고,
미워하면 따라 미워합니다.
이 시기에 아이는
엄마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고,
그대로 따라 배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아이를 탓하면 안 되고,
아이를 보면서 나를 돌아봐야 합니다.
친정 부모든 시부모든
노인을 모시고 살다 보면 갈등이 생기는데,
노인의 특성을 알면
크게 충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노인의 특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안 바뀌는 존재인데 자꾸 바뀌기를 바라니까
결국 자기만 괴로워져요.
그래서 부모와의 사이에 갈등만 깊어집니다.
그러면 부모는 어떻게 대해야 갈등이 없을까요?
항상 맞춰 주는 거예요.
부모가 뭐라고 해도
“네, 알았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맞추는 겁니다.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각자의 견해일 뿐이에요.
부모에게 물어보면 자식이 문제라는데,
자식에게 물어보면
다 부모가 문제라고 합니다.
견해라는 것이 다 자기 입장에서
갖는 생각이기 때문에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내 뱃속에서 낳은 애도 내 말을 안 듣는데
나를 낳아서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부모가
자식 말을 들을까요?
부모는 안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내 생각을 고집하지 말고
그분 생각대로 맞춰 주면 돼요.
그러면 행복한 인연을 만들 수 있습니다.
두 아낙네가 콩밭을 매고 있습니다.
누가 주인이고 객일까요?
지켜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일을 마치자 ‘가’가 ‘나’에게
돈을 주며 말합니다.
“수고 많았어요.”
돈 주는 쪽이 주인이고
받는 쪽이 객이지요.
그런데 주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모두가 인사를 받고
도움 받으려고만 합니다.
그러다 보면 늘 객으로 떠돌게 됩니다.
주인은 먼저 주는 사람입니다.
먼저 주는 사람이 될 때,
비로소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사랑을 어디까지 지속해야 성공이다.’
라는 것은 없습니다.
내 마음이 끌리고 좋으면 그게 바로 성공입니다.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는
‘내가 좋아한 만큼 너도 나를 좋아해야 해.’라고
장사꾼처럼 계산하고 대가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 그 자체에는 실패가 없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내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랑은 전부 성공입니다.
사랑에는 오직 성공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부모가 낳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부모가 키워주셨기 때문입니다.
자식 잘못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습니다.
제대로 못 키웠어도
형편이 안 되어 그런 것이고
부모가 싸운 것도
서로 성질이 안 맞아서 그런 것이지
나와 관계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께는 다만 감사할 뿐입니다.
두 눈 다 잘 보이던 사람이
한쪽 눈을 다치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을 못 보던 사람이
한쪽 눈을 고치게 되면
행복해 하겠지요.
똑같이 한쪽 눈으로 세상을 봐도
한 사람은 그 조건이 불행이 되고
다른 사람은 행복이 됩니다.
생각해보면 행복이나 불행은
다른 사람이나 어떤 조건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 때가 많습니다.
세상을, 상대를 바꿔야만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이룰 수 없는 내 인생을 탓하거나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그 원인이 나에게 있고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되어서 생긴 문제임을 알면
아주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내 의도와 관계없이 생긴 사건 때문에
상처를 입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해치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제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말아야 합니다.
돈이 얼마나 있으면 부자일까요?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부모, 형제끼리 싸우는 부자들을 봅니다.
이렇게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할 줄 모르면 거지요,
만족하면 부자입니다.
즉 내가 부자로 사는 법은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나와 아무런 관계없는 장애인도
돌보고 봉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물며 서로 자식 낳고
한 이불 덮고 자는 남편을
돌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돌본다는 마음으로 산다면
아무리 못마땅하고 부족한 남편이라도
같이 못 살 이유가 없습니다.
흔히 여자 반쪽과 남자 반쪽이
하나로 합해져서
온쪽이 된다고 합니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렇게 합쳐지면
절대로 온쪽이 될 수 없습니다.
홀로 온쪽이 되지 못하면
다른 사람과 함께 해도
결코 온쪽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만남은
온쪽과 온쪽의 만남입니다.
상대에게 집착하는 마음이 있으면
온쪽이 될 수 없습니다.
반쪽끼리의 만남은
또 다른 제3의 반쪽을 낳을 뿐입니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둘이 있으면 귀찮다.’
이것이 중생심입니다.
둘이 있으면 둘이 있어서 좋고,
혼자 있으면 혼자 있어서 좋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시누이, 시동생 다 키우고
결혼까지 시켰는데
아직도 도와달라고 해서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 소리를 안 듣고 싶으면 방법은 간단해요.
폭삭 망하면 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면
도와달라는 소리를 안 해요.
그러니 내가 가진 것이 있어서
남한테 도움을 주고 사는 것이 좋겠습니까?
내가 아무것도 없어서
남한테 도움을 받고 사는 것이 좋겠습니까?
갈등은 왜 생길까요?
사람은 생각이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내가 옳고 당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니까
갈등이 생깁니다.
그럴 때
‘이 갈등을 어떻게 없앨까?’
고민하지 말고
‘생각이 다른데 내가 옳다고 고집했구나.’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면 됩니다.
사람마다 자기 생각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다 옳습니다.
남편에 대해
자식에 대해
부모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할수록
실망을 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얼굴이 어떠니, 능력이 어떠니
하면서 자신을 못마땅해 합니다.
'이대로 좋다' 이것이
수행의 가장 핵심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그대로 인정하는 바탕에서
조금씩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사회 문제도 그렇습니다.
'이것도 문제다, 저것도 문제다'
이렇게 불평만 하면
이것은 파괴를 부를 뿐입니다.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다' 하는
긍정을 바탕에 깔고
'그래도 이런 것은 개선하자'
이렇게 해야지 에너지가
건설하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자식이 못마땅하고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고
부모에게 불만이 있고
사회가 부정적으로 보여도
'이대로 좋다'고 생각하고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개선해 나가다 보면
희망이 생겨나게 됩니다.
조선시대에는 결혼생활이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러가기 전에
부모가 미리 교육을 시켰죠.
'시집가면 삼 년은 엎드려라.
눈이 있어도 본 게 아니고
귀가 있어도 들은 게 아니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말아라'
그렇게 까지 말을 하니
죽는 줄 알고 시집을 갑니다.
그렇게 전혀 기대가 없었는데
막상 가보니 죽는 것도 아니고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죠.
그래서 얼굴에 미소가 돕니다.
그런데 요즘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거품을 많이 넣고
좋게만 묘사를 해놓았습니다.
그래서 기대를 잔뜩 안고 갔다가
막상 살아보니 별 것 아니니
처음에는 웃으며 갔다가
나중에는 '혼자 사는 게 낫겠다'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렇게 과거에는 지금보다
상황이 안 좋았지만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만족이 컸던 것이라면
지금은 기대가 크기 때문에
실망이 큰 것입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고
기대가 작으면 만족이 커집니다.
삶의 행복은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남을 바꾸려는 것도 아니고
복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 상황을 받아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 저런
문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나에게는 별 것 아닐 수도 있고
내게는 큰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별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밖의 누군가가
나를 속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습관, 내 사고의 습관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늘 되풀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윤회라고 하죠.
주어진 조건을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행복해 질 수도 있고
불행해 질 수 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 저런
문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나에게는 별 것 아닐 수도 있고
내게는 큰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별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밖의 누군가가
나를 속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습관, 내 사고의 습관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늘 되풀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윤회라고 하죠.
주어진 조건을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행복해 질 수도 있고
불행해 질 수 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헤어진 사람에 대한 미련도 끊고
그 사람이 남긴 상처도 치유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내가 그를 좋게 생각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기는 겁니다.
'내가 내 생각에 너무 빠져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하고 나를 돌아보세요.
지난 관계를 좋은 이미지로
전환하는 것은 결국
내 삶을 행복하게 합니다.
이렇게 상처를 치유해야
다른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과거의 기억이 상처가 아닌
좋은 경험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아이를 키울 때
부부간에 갈등이 있으면
엄마가 아이에게
아빠를 원망하는 말을
하게 될 때가 있죠.
그러면 아이의 마음에
아버지에 대한 저항이 생겨서
그것이 아이의 인생에
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있는 아이가
커서 배우자를 만났을 때
그에게 아버지와 같은 문제가
발견되면 자기 상처 때문에
격렬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아이를 생각한다면
상대의 허물을 감싸주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우리 아이는 잘 자랄 겁니다.
아무 걱정 없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위해 기도한다면
매일 이렇게 기도해 주세요.
엄마가 자꾸 잔소리를 하면
아이는 엄마에게조차
문제 있는 아이가 되어
자존감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이런 아이는 커서
‘나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스스로를 자책하게 됩니다.
아이에게 엄마는 신입니다.
‘세상이 나를 해쳐도
우리 엄마는 나를 보호한다.’
‘세상이 나를 비난해도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해준다.’
이렇게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나
가족 혹은 세상에 대해서
여러 가지 기대를 하며 삽니다.
‘나는 이래야 되고,
우리 가족은 이래야 되고
세상은 이래야 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죠.
하지만 그런 생각은 모두
스스로 지어낸 허상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재인 것처럼
집착하게 되면 내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신을, 가족을, 세상을
미워하고 괴로워하게 됩니다.
현실을 부정적으로 보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 쉽습니다.
우선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보세요.
스스로 편안해지고 나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개선책을 연구하고 실천하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죠.
그런데 사실을 잘 살펴보면
그는 자기 습관대로 살아갈 뿐
꼭 나를 괴롭히고 화나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내 식대로 받아들여
화를 내고, 짜증을 냅니다.
‘또 내 생각에 사로잡혔구나.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성을 내는구나.’
하고 자꾸 돌이켜본다면,
짜증이 나더라도
오래가지 않고
횟수도 적어지고,
강도도 훨씬 약해집니다.
내가 가진 습관도
잘 안 고쳐지는데
다른 사람의 습관을
고칠 수는 없습니다.
남이 안 고쳐진다고
화를 내게 되면
결국 자기만 손해입니다.
이 세상에 본래부터
나와 맞는 것은 없습니다.
연구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하다 보면 맞게 되는 것이죠.
처음 운전이 서툴 때는
안 맞는 것 같다가
오래하다 보면 잘하게 되고
피아노도 처음 치면
안 맞는 것 같지만
익숙하면 잘 치게 됩니다.
사람도 처음부터 나에게
딱 맞는 상대는 없습니다.
안 맞는 것 같더라도
자꾸 이해하다 보면
나와 맞는 사람이 됩니다.
좋게 생각하고 가꾸다 보면
좋은 아내, 좋은 남편이 됩니다.
팔짱끼고 앉아서
누가 먼저 무릎을 꿇느냐
기 싸움 하지 말고
내가 먼저 양보해 주세요.
말 한 마디 먼저
하기 싫어서 버티다가
헤어지려 했던 것도 아닌데
헤어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좋은 조건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바라지 말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좋은 조건을 만들어가도록 하세요.
사후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궁금해하고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바르게 산다면
극락이 있다면 갈 것이고
지옥은 있다해도 가지 않을테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지금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극락 갈 일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극락에 가고 싶어 하고
지옥 갈 일은 잔뜩 해놓고
지옥에 안 가려는 것은
썩은 씨앗을 뿌려놓고
좋은 열매를 거두고
싶어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일 어떻게 될지를 걱정하지 말고
오늘 마음을 바르게 닦으세요.
그러면 내일은 저절로 좋아집니다.
아이가 방황활 때 엄마는
아이가 이유 없이 방황하고
나를 속상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엄마의 바라는 마음이
아이를 방황하게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깨우치고
나아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이가 자라나 스스로
깨우치기 위해서는
아이의 문제까지
엄마가 참회하고
수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이런 저런 저항을 할 때
야단치고 때리고 화내기 보다
‘내가 지은 인연
때문에 네가 힘들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참회해 보세요.
아이가 옳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도 힘든가 보구나.’
하고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하게 되면 아이를
편안하게 지켜볼 수 있습니다.
이해하는 마음 위에서
바른 길을 일러주게 될 때에
설득력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요새 결혼은
당사자들의 문제라기보다
부모들의 문제입니다.
자녀가 결혼한다고 하면
부모가 사람은 안보고
재산은 어떤지, 학교는 어디인지
인물은 어떤지, 부모는 뭐 하는지
이렇게 부모의 욕망을
자녀에게 강요합니다.
하지만 자녀를
고생시키지 않으려는
부모의 잘못된 생각이
결혼생활을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결혼해보니
인물이 중요치 않고
재산도 두 번째고
지위도 아니더라.
결국 사람 하나 문제야.
그러니 너무 따지지 말고
사람 좋으면 그냥 해라
인생이라는 게 별거 아니다"
살다보면 돈이
필요한 건 맞지만
모든걸 다 돈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행복이 돈으로 해결이 될까요?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요즘 한창 도전하고
꿈꾸어야 할 10대, 20대의
자살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왜 젊은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걸까요?
그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상상의 자기를 만들고
그것이 진짜 나인 줄 착각하는 것이죠.
그런 '내가 만든 나의 모습'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말이 서툴면 서툰 게 '나'고,
눈이 안 보이면
눈이 안 보이는 것이 '나'입니다.
이 현실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자기 사랑'이라고 합니다.
우리 몸에 문제가 생기고 아프다면
큰 일일 수도 있지만
관점을 바꿔 생각해보면
그 또한 감사할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갑자기 눈이 나빠지면 어떨까요?
눈 밝은 사람에 비하면 문제지만
안경을 끼면 해결이 되니
볼 수 없는 사람에 비하면
그 정도도 괜찮은 것입니다.
눈이 잘 안 보이지만
귀라도 들려서
좋은 말씀을 듣고
수행할 수 있어서 좋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아픈 것에만 신경 쓰면 더 아파집니다.
그러면 낫는데 도움이 안됩니다.
치료는 하되 집착하지 말고
이만한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을
틈나는 대로 표현해보세요
그러면 몸은 아프지만
마음은 기뻐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기뻐지면
몸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갈등을 푸는 것은
자기를 살피는 것에서
출발해야합니다.
상대가 먼저 바뀌기를 기대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분란만 커지고
갈등이 깊어집니다.
너그럽게 이해심이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것은
바로 내가, 내 인생이
그렇게 변화하는 것입니다.
인연의 매듭을 푸는 것은
상대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나를 바꾸는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사춘기는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움을 얻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입니다
성적이 떨어졌거나
실수를 하는 것에 대해
부모가 지나치게 고민하고
문제를 삼는 것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시기의 방황은
어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하는 성장통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교정할 수 있도록
차분히 지켜봐 주세요.
부모가 대범해야
교육이 제대로 되고
아이도 의젓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