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각을 짓습니다.
울타리를 치는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진실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생각이 멈추어 버린 상태가 되면 삶이 그대로 진실이 됩니다
이런 상태를 ‘무아(無我)’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공(空)’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겁니다.
단순히 내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머리를 굴리는 것을 ‘사량 분별(思量分別)’이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사량 분별을 하는 것이 우리 삶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곧 진실은 아닙니다.
깨달음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이미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뇌 속의 가상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한 생각을 멈춘다는 것은 가상현실의 스위치를 끄는 것과 같습니다. 한 생각 멈추면 아무런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꿈을 꾸다가도 눈만 뜨면 아무 일이 없는 것과 같아요.
살면서 어떤 것에 한 생각이 멈춰서 사로잡히게 되면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곧 현실처럼 느껴집니다.
눈을 뜨고 ‘아, 꿈이네!’ 하기만 하면 아무 일도 없는 거예요. 그런 것처럼 여러분도 한 생각 내려놓으면 ‘아, 괴로울 일이 없네!’ 하고 깨닫게 됩니다. 괴로워할 일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거기서 끝나는 거예요.
이렇게 사량 분별을 버리는 이치를 사량 분별로 설명한 것이 금강경입니다
‘무량(無量)’, ‘무수(無數)’, ‘무변(無邊)’ 이런 표현들을 하게 된 겁니다.
꿈에서 깨는 것은 꿈속에서 천금을 버는 것보다 더 값진 일입니다. 이건 실제로 꿈에서 깨어나 봐야 ‘그렇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는 천금을 버는 것보다 꿈을 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아무리 말해줘도 와닿지가 않습니다. 금강경에서 이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 ‘이 우주를 일곱 가지 보물로 가득 채워서 보시를 하는 것이 꿈에서 깨는 것만 못하다’ 하는 구절입니다.
그래서 이치를 말로 표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동시에 이치를 표현하는 말은 허깨비 같은 줄도 알아야 합니다. 달을 보여주려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도 필요합니다. 대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때문에 달을 못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을 보지 말라’ 하는 말이 있는 거예요. 그렇다고 손가락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달을 가리키려면 손가락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손가락을 통해서 손가락 너머의 달을 보듯이 이치를 표현하는 말을 통해서 그 너머의 세계를 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량 분별을 버리라는 건 사량 분별을 통해서 사량 분별 너머를 보라는 의미입니다.
말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본질이 무엇인지 직시하는 게 중요합니다. 물론 그 길로 인도하려면 말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질로 인도하는 말 자체를 지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가상세계에서 놀아도 괜찮아요. 대신 괴로워하지는 말라는 겁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요지를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오해하면 안 돼요. 부처님의 말씀은 무엇을 하든 괴로워할 이유는 없다는 겁니다. 괴로우면 가상세계의 스위치를 꺼버리면 됩니다. 스위치를 끄면 되지 뭣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영상을 계속 봐요.
정말 괴로워할 만한 이유가 있는지 한 번 살펴보라는 겁니다. 누가 총을 쏘는 데도 ‘나는 수행자이니까 괴롭지 않다’ 하면서 총을 맞으라는 게 아니에요. 그런 상황이 와도 괴로워하지 말고 죽지 않으려면 피하라는 겁니다. 죽으려면 그냥 맞는 길도 있어요. 모두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요즘 핫한 메타버스의 세계를 설명하시면서 깨달음의 관점을 설명하시는데 무릎이 탁쳐지네요
12.3.2021
아침에 스님의 하루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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