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게 한번 죽어야 되살아난다. @
大死一番(대사일번) 絶後蘇生(절후소생)
조주화상이 투자선사에게 질문했다.크게 한 번 죽은 사람이 되살아날 때는
어떻습니까?
투자선사가 대답했다.야간에 통행을 해서는 안된다.날이 밝으면 반드시
도착해야 한다.
질문의 요지는 선수행을 통하여 불법의 궁극적인 경지를 체득하여 불법의
지혜 작용을 자유롭게 펼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를 물은 것이다.
투자선사는 각도를 달리하여 대답한 것이다.
선어록에 크게 한 번 죽어야 한다.(대사일번)이 나온다.
死(사)는 아상 인상의 자아의식과 중생심을 완전히 텅비운 空(공)의 실천 수행
을 가리키며
活(활)은 일체의 번뇌 망념의 생사심과 사량 분별을 여의고 철저히
크게 깨달은 무심의 경지에서 불심의 지혜작용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선어록에서 사 활은 살인도,번뇌 망념을 죽이는 칼과 활인검, 불법의
궁국적인 경지를 체득하여 불법의 지혜작용을 자유롭게 펼치는 것을 설명할
때 쓰인다.
살활자재란 선승의 機智(기지)로서 번뇌 망념을 죽이고 지혜작용을
살리는 지혜를 자유롭게 쓴다.
그러니까 편견과 고정관념 사량 분별심 등
업장을 만드는 중생심을 텅비우는 공의 실천이며 불심의 지혜작용을
펼치는 것이다.
眞(진)선사는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아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고 하였다.
깨닫고자 하면 죽음을 두려워 해서는 성취할 수 없다.참 어려운 문제다.
죽었다 다시 소생(절후소생)하는 일이 百尺竿頭進一步(백척간두진일보) 즉 백척
의 장대 끝에서 다시 한 발 뛰어 허공에 몸을 날려야 한다.
깨달음의 경지에서
머물지 않고 나가야 불심의 지혜작용은 되살아난다.
간절함으로 공부가 익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된다,
물러날 수도 나갈 수도 옴싹달싹 할 수 없는 철벽에 부딪친다.이때는 내가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쌓이기도 한다.물러서서는 큰 뜻을 이룰 수 없다.크게 한 번 죽어서
앞 뒤의 모든 생각이 끊어지고(絶;끊어짐) 다시 살아나 완전히 달라진다.생각이
끊어져 스스로 무심해지는 것이다.세상이 확 바뀐다.轉身(전신)이라 부른다.
죽음을 각오하는 마음 없이는 깨닫지 못한다.
그러면 여기서 조주화상의 질문에 대하여 투자선사가 대답한 것은 명암의 차별
경계를 비유해서 말한 것이다.어둠과 밝음이나 죽고 사는 생사 모두 차별 경계를
뜻한다.취사 분별하는 중생심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어야 한다.
무심으로 차별 경계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지혜를 체득하도록 불법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생사가 없는 경지에서 무상지혜 무루지혜가 나와 중생을 제도하는
경지에 이르면 얼마나 좋을까?
벼랑 끝 낭떨어지에서 한 발 내딛어 한 번 크게 죽어서 천지가 무너지고 의식이
끊어지고 다시 살아나면 지금껏 보던 세상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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